오늘은 창조의 둘째 날, 하나님께서 물 한가운데 궁창을 만드시고 물과 물을 나누신 사건 속에 담긴 놀라운 구속의 신비를 나누고자 합니다.
창세기 1장 1절부터 우리는 이 말씀이 단순히 과거의 물리적 창조를 기록한 보고서가 아니라, 처음 구절부터 일차 독자, 즉 출애굽 하여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창조에 쓰인 단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고 그것을 성경 전체에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는가를 계속 확인해 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문도 이 구절만 따로 떼어서 독자적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이미 살펴본 앞의 구절들과 연관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둘째 날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 1:6-8, 새 번역] 6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물 한가운데 창공이 생겨, 물과 물 사이가 갈라져라" 하셨다. 7 하나님이 이처럼 창공을 만드시고서, 물을 창공 아래에 있는 물과 창공 위에 있는 물로 나누시니, 그대로 되었다. 8 하나님이 창공을 하늘이라고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튿날이 지났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6절)
본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물들 한가운데에 넓게 펼쳐진 공간(라키아)이 생겨라. 그리고 그것이 물들 과 물들 사이를 갈라놓는 자가 되어라.
다시 히브리어 문법 구조를 그대로 한국어로 옮긴다면
"그때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물들 정중앙에 넓게 펼쳐진 공간이 존재하라. 그리하여 그것이 물들 과 물들 사이를 갈라놓는 역할을 수행하게 하라'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궁창”이란 히브리어로 ‘라키아’라는 말인데 동사 ‘라카’(두들겨 펴다)에서 파생되어 ‘넓게 펼쳐진 것, 광활한 공간, 얇게 편 휘장이라는 뜻이며 나뉘라 (히, 바달)은 구별하다', '분리하다, 즉 거룩한 것과 속된 것, 빛과 어둠을 가르는 성별'의 단어입니다.
[욥 37:18] 그대는 그를 도와 구름장들을 두들겨 넓게 만들어 녹여 부어 만든 거울 같이 단단하게 할 수 있겠느냐
[렘 10:12] 여호와께서 그의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의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의 명철로 하늘을 펴셨으며
여기서 명철 (히, 테부나)은 '분별하다, 구별하다, 분별의 지혜를 뜻하는 '빈'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는 혼돈 속에서 질서 있게 경계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설계 권능이며, 곧 우리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고전 1:24, 새 번역]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유대 사람에게나 그리스 사람에게나, 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용된 궁창이란 요즘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 단어인데 달리 표현할 말이 없어서 개정성경에서 옛말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창공"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새 번역에는 ‘창공’, 쉬운 성경에는 ‘둥근 공간’, 현대인의 성경에는 ‘넓은 공간’이라고 번역)
‘라카’는 성막을 지을 때 금이나 놋을 얇게 편다는 말로 쓰였습니다(출 39:3, 민 16:38-39 등). 언약궤를 만들 때 금을 넓게 펴서 조각목을 덮어 쌌으며(출 25:10-11). 넓게 펴서 덮어 싸는 의미로 나타낸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막에 창조의 의미를 담아 놓고 그것을 통해 오실 메시아를 보여주고자 하셨습니다.
또한 펴셨으며 (히. 나타)는 장막(텐트)을 치기 위해 천을 넓게 펼치거나, 손을 뻗는 동작을 의미합니다.
마치 거대한 휘장을 두르듯 우주라는 공간을 확장하여 생명이 거할 '집'으로 만드셨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당시 장막의 비유는 고대인들에게 하늘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대한 장막이자,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쳐주신 지붕이었습니다.
[사 40:22, 새 번역] 땅 위의 저 푸른 하늘에 계신 분께서 세상을 만드셨다. 땅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메뚜기와 같을 뿐이다. 그는 하늘을, 마치 엷은 휘장처럼 펴셔서, 사람이 사는 장막처럼 쳐 놓으셨다.
따라서 하늘을 펴셨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라는 "장막" 아래 있게 되었음을 뜻하며 또한 하나님의 명철로 펼쳐진 은혜의 하늘인 구원 아래 가두어질 때, 비로소 참된 평안 안에 거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 홍해를 건넌 것을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더라 (출 14:29)라고 하였는데,
여기 “바다 가운데”라는 말이 ‘타웨크’인데 한복판, 정중앙, 가장 깊은 속, 즉 양쪽을 똑같이 나누는 중심축 혹은 사물의 가장 핵심적인 내부를 뜻합니다.
물과 물 가운데를 지났다는 것은 물의 중심에 있었고 그것을 통과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힘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는 죽음의 영역 한복판으로 들어갔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바울 사도는 "세례"라고 하였습니다.
[고전 10:1-2, 새 번역] 1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사실을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의 보호 아래 있었고, 바다 가운데를 지나갔습니다. 2 이렇게 그들은 모두 구름과 바닷속에서 세례를 받아 모세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위에는 구름(하나님의 임재)이 덮여 있고, 좌우에는 바다(물벽)가 서 있어, 이스라엘 백성이 그 공간 가운데(타웨크)에 완전히 갇히듯 잠겨버린 상태를 묘사합니다.
이는 옛 자아가 물의 한복판에서 죽고, 다시 그 물을 뚫고 나옴으로써 새 생명으로 부활함을 상징합니다.
이것이 곧 "잠기다"라는 뜻을 가진 세례의 모습입니다.
또한 구름 아래와 바닷속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능력에 완전히 둘러싸여 도망갈 곳 없는 가운데 (타웨크)에 있었음을 의미하며
이스라엘이 바다 가운데(타웨크)를 통과했다는 것은 애굽의 종이었던 과거와 완전히 단절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홍해를 건넌 사건은 죽음의 권세를 통과하여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새로운 공동체로 거듭난 "세례"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7절에서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살아 있는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리라(와예히-켄,)
여기서 그대로 되니라의 이 문구는 두 단어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와예히 "그리고 ~가 있었다", "일어났다", "존재하게 되었다" 즉 말씀하시자마자 곧바로 그것이 실재가 되었다."는 의미이며
켄: "그렇게", "확고하게", "정확히 그대로" 말씀하신 설계 그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견고하게 딱 들어맞게 세워졌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와예히-켄은 그러자 (말씀하신 그대로) 정확히 고정되다', '뿌리박다'라는 의미,”즉 그 상태가 확정되어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직역하면 ‘그리고 하나님이 그 창공을 만드셨다. 그리고 그 창공 아래로부터 그 물 사이와, 그 창공에서 위로부터 그 물 사이를 구별하시니 그대로 존재했다’라는 말씀입니다.
궁창이 위와 아래를 엄격히 나누듯, 하나님의 언약인 율법(계명)은 생명과 사망, 거룩과 속됨을 나누는 기준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궁창을 만드시고 그대로 되리라(와예히-켄) 하신 것은, 인간을 향한 심판과 구원이 결코 변할 수 없는 영원한 하나님의 언약으로 확정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8절에서 궁창을 하늘이라고 하였으니까 하늘이라 표현하자면 하나님께서 왜 물들을 나누셔서 하늘을 만드셨을까요?
하늘을 만드실 때 처음부터 물 한가운데 하늘을 만드시지 않고 물들 과 완전히 결별된 하늘을 만드셨다면 좋지 않았을까요?
궁창 위의 물(살아 있는 물)에 대한 논란도 없을 것이고 말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 즉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창조"를 나타내시고 싶은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물과 완전히 결별된 하늘을 처음부터 따로 만드셨다면, 그것은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거룩함"만을 상징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굳이 '물 한가운데' 궁창을 두어 물을 나누셨습니다.
이는 죄의 물들(심판과 죽음의 상징) 속에 갇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거룩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고통 한복판(물들 가운데)으로 들어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보여줍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의 육체를 휘장에 비유합니다. 궁창이 위의 물과 아래의 물사이를 가로막으면서도 동시에 연결하는 통로가 되었듯,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찢으심으로 단절된 두 세계를 잇는 유일한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궁창을 통해 물을 나누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죽음의 물을 통과하게 하여 하늘의 신령한 복에 참여하게 하시려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미리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8절)라고 하여 둘째 날이 이루어집니다.
여기서 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이 빠져 있는 이유는, 둘째 날의 ‘나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셋째 날의 ‘드러남’을 향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궁창을 사이에 두고 물과 물이 나뉘는 사건은 아직 하나님의 계시가 완전히 실현된 상태가 아닙니다.
그 나눔은 셋째 날, 흩어져 있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마른땅이 그 모습을 드러낼 때 비로소 완성된 의미를 갖게 됩니다.
따라서 둘째 날의 '나눔'은 셋째 날의 '드러남(땅)'을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고 요단강을 건널 때, 물이 좌우로 나뉘며 마른땅이 드러났습니다.
이는 죽음의 세력을 가르고 생명의 길을 내시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상징합니다.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때(요 3:5), 죽음의 물은 갈라지고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마른땅'(반석)처럼 견고하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창조 둘째 날에서 물과 물을 나누며 생명의 공간가운데 있던 그 궁창이, 에스겔의 환상 속에서는 하나님의 보좌를 받드는 찬란한 기초로 등장합니다.
26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27 내가 보니 그 허리 위의 모양은 단 쇠 같아서 그 속과 주위가 불 같고 내가 보니 그 허리 아래의 모양도 불 같아서 사방으로 광채가 나며 28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엎드려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으니라(겔 1:26-28)
에스겔 선지자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을 보았는데. 보좌의 형상 위의 한 형상이 사람 모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노아의 홍수 이후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의 증표인 무지개가 있다는 것은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보이시고 그 언약대로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이 이루실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궁창 위의 보좌에 앉은 분이 자신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날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언약 안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 19: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요한복음을 이 창조의 상태를 그대로 가져와 복음으로 설명하였는데 1장에서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하나님으로부터 만물이 나왔고 말씀이신 그분이 빛으로 이 땅에 오셨다고 선언했습니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음으로 죽음을 통해 이루실 언약의 성취를 보여주셨으며 그리고 니고데모를 만나셔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 3:3-5]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약 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직역하면 "모든 좋은 주는 것(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시는 그 행위 자체가 선하다는 뜻입니다.)과 모든 완전한 선물은 위로부터 있으며,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분에게는 변함도 없으시고, (천체들처럼) 회전함으로 생기는 그림자도 없으십니다."
여기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거듭나다(헬, 아노덴)라는 말이 바로 ‘위로부터 나다, 하늘로부터 나다’라는 의미이며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인 것입니다.
그것이 “위로부터”(헬, 아노덴) 주어지는 것이죠 그래서 요한 사도는 4장에 사마리아 여자와의 만남에서 생수 이야기를 합니다.
[요 4:10-14]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사마리아 여자가 먹는다는 야곱의 우물이 아랫 물인데 마셔도 다시 목마른 물인 것입니다.
율법으로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그 아랫 물로써는 영원한 해갈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자신을 생수로 표현하시며 예수님이 주시는 물이 윗 물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은 곧 은혜로 주어지는 당신 자신을 의미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땅의 우물물을 길으러 온, 즉 세상의 가치와 한계 속에 갇힌 '아랫물'에 속한 존재였습니다. 그녀의 갈증은 세상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아랫물 인생의 본질적인 결핍을 상징합니다.
반면 예수님은 궁창 너머, 즉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온 '윗물'에 속한 분입니다.
에스겔이 보았던 그 보좌 위에서 '사람의 모양'을 입고 내려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결국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 앞에 서신 순간, 비로소 아랫물과 윗물은 선명하게 나누어지고 구별됩니다.
여기서 생수를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요 7:38-39, 새 번역] 38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이 말한 바와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 39 이것은, 예수를 믿은 사람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서 하신 말씀이다.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사람들에게 오시지 않았다.
예수님은 내면에서 솟구치는 생수를 곧 '성령'이라고 정의하셨습니다.
[롬 8:26, 새 번역]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따라서 생수는 내 안에서 하나님의 영(성령)이 계속해서 말씀하시고, 기도하시고, 생명을 공급하시는 '상태' 그 자체입니다.
아모스가 말한 '마르지 않는 강(에탄)'처럼, 내 안의 성령님은 내가 지치고 메마른 순간에도 쉬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 '위로부터' 온 생명을 다시 '위로' 되돌려 보내는 간구를 이어가십니다.
따라서 영생은 빛이신 아버지께로부터 '위로부터' 내려와 내 안(배)에 들어오신 생수이신 성령님이 나보다 더 나를 위해 탄식하며 하나님과 나를 연결하시며 그 간구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내 안에 가득 차서, 결국 내배에서 넘쳐 마르지 않는 강물이 되어 흘러갑니다.
결국 "영생은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성령님이 끊임없이 하늘의 뜻을 구하며 일으키시는 역동적인 소용돌이이자 흐르는 강물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말할 수 없는 성령의 탄식의 간구가 생수의 강이 되어 흐르게 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양자) 됨으로써 거룩해져 가는 이 과정이 영적 예배인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궁창을 통해 하나님이 드러내고자 하신 의도를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계 14:6-7] 6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궁창을 하늘이라고 하였는데 성경 곳곳에서는 그 하늘을 휘장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사 40 :22]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에 사는 사람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 같이 펴셨으며 거주할 천막 같이 치셨고
[시 104:2] 주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 같이 치시며
이런 점에서 하늘을 찢는다는 것을 휘장이 찢어지는 것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그 휘장이 곧 예수님의 육체라고 성경을 밝힙니다.
[마 27: 50-51]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히 10:19-20]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휘장”이라는 헬라어 ‘카타페타스마’란 말은 아래로 퍼지다라는 카타페타뉘미에서 유래된 말인데,
직역하면 아래로 펼쳐져 내린 것", "완전히 가려버린 덮개" 이것을 구약의 용어로 표현하면 ‘라키아’입니다.
즉 궁창이 찢어져 열린 것이죠.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찢으셨다는 뜻입니다.
궁창(라키아)이 위아래의 물을 갈라놓았듯이, 성막에서 앞뜰과 성소,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되어 함부로 접근할 수 없게 한 휘장(카타페타스마)이 찢어짐으로 길이 열렸고 하늘이 열렸습니다.
이것을 요한복음의 표현으로는 예수님의 육체를 성전이라고 나타냅니다. [요 2:19-21]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그러므로 건물로써의 성막, 성전을 넘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이루신 진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윗 물을 먹는 자가 생명이 되는 것이며 아랫 물로 죽은 상태에 있는 자가 윗 물을 먹는 자로 살아나는 것인 이것을 성경에서 "생명"이라고 합니다.
창공이 찢어져 열리면 위의 물이 내려와 아랫 물을 덮어버리게 되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말씀이 이사야 선지자의 선포입니다
[사 11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그래서 요한복음에서는 나다나엘에게 하늘이 열린다고 하였는데
[요 1:51, 새 번역] 예수께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늘이 열리는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며 예수님을 이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표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나다나엘을 부르신 후 첫 번째 표적을 나타내신 것이었습니다.
결국 아래의 물을 통해 위의 물을 알아야 한다는 뜻인 것이죠
이것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영이 수면의 얼굴을 대하여 일하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그 물을 아래의 물과 위의 물로 갈라놓고 이 땅에 오실 하나님을 보여주시고 설명하신 것이었으며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신 이것이 창조 언약 속에 담아 놓은 하나님의 의도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조 둘째 날의 신비는 결국 우리를 살리시려 죽음의 물 한복판으로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세상의 아랫 물에 목말라하던 우리였으나,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찢으신 휘장을 지나 위로부터 부어지는 성령의 생수를 소유한 자가 되었습니다.
언제나 우리를 덮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장막, 그 거룩한 궁창을 신뢰하십시오.
우리 안에서 솟구치는 성령의 생수가 세상의 모든 유혹과 걸림돌을 넉넉히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하늘 문을 여신 주님과 동행하며 영생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