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 구원의 위대한 서막이자 성취된 언약의 시작인 유월절을 통해, 혼돈의 한복판에 임재하셔서 우리를 아들로 세우시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11:4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라고 하신 말씀대로 이제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셔서 하실 일을 말씀하십니다.
직역하면 "밤의 정점(절반)에, 나(여호와)는 이집트의 가장 깊은 심장부(타웨크)를 가르며 나아갈 것이다."
밤의 정점(밤의 타워크): 창세기 1장에서 어둠(밤)과 빛(낮)을 나누셨던 분이, 이제 시간의 한복판인 '밤중'에 개입하십니다. 이는 심판의 시간이 창조주에 의해 결정되었음을 뜻합니다.
이집트의 한가운데로(베토크 / 타워크) 창세기에서 물 가운데(타웨크)에 창공을 두어 위아래를 가르셨듯이, 하나님은 이집트라는 거대한 혼돈의 세력 가운데(타웨크)로 직접 들어가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스스로 창공(구분하는 기준)의 역할을 하십니다.
그분이 '가운데'를 관통하시는 순간, 죽어야 할 자(이집트의 장자)와 살아야 할 자(어린양의 피 아래 있는 이스라엘)가 창조 때의 물처럼 명확하게 분리됩니다.
혼돈(이집트)의 한복판(타웨크)에 창조주가 직접 임재(창공의 역할)하여, 생명과 심판을 엄격히 분리(나누심)하는 창조 언약의 온전한 성취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심판은 처벌이 아닌, 무질서한 이집트의 압제 속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드러내기 위해 그 중심을 가르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일하심입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말씀하시되(1절).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히, 아마르) 하셨다는 것은 이제 이 열 번째 이적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성취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 15:13-14)
여호와의 선포는 말씀이 곧 능력이요, 구원을 실제가 되게 하며 아랫물의 혼돈 속에 생명의 길을 내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새 창조의 일하심입니다.
특히 본문이 "애굽 땅"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곳이 이스라엘의 노력으로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속박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그 현장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은 스스로 일하시며 그 약속을 이루어 내십니다."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2절).
“달”의 호데쉬는 하다쉬 (새롭게 하다, 새로 만들다, 다시 세우다)에서 온 단어로 초승달, 달, 매달의,월삭이라는 뜻이고, “시작”은 로쉬로머리, 꼭대기, 우두머리, 시작, 처음이라는 뜻이며, “첫 달”의 ‘리숀’은 ‘로쉬’(머리)에서 유래한 단어로 ‘첫째의, 최초의’ 즉, 시간의 흐름에서 가장 우두머리가 되는 중요한 위치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직역하면 "이 달이 너희에게 달들의 머리(시작)가 될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해의 달들 중 첫 번째가 될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장자의 죽음이라는 표적을 나타내신 그달을 한 해의 시작으로 삼으신 것은, 이전의 시간과는 단절된 새로운 창조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새 달"은 첫 열매를 상징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죽음에서 건져내어 당신의 아들로 세우시는 성취된 언약의 실제적인 시작을 의미합니다.
[출 4:22, 새 번역] "너는 바로에게 말하여라. '나 주가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은 나의 맏아들이다."라고 하신 말씀처럼, 새 달의 시작은 곧 아들로서의 신분을 회복하는 선언입니다.
아빕(아비브, 푸른 이삭) 월을(호데쉬)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을 행하라 이는 아빕월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밤에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라(신 16:1)
14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아비브) 볶아 찧은 것으로 네 소제를 삼되 15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지니 이는 소제니라(레 2:14-15)
아빕월의 푸른 이삭(아직 연약한 상태)이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불에 볶아지고 찧어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세워지기 위해 겪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겉모양만 이삭인 상태에서, 속까지 온전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양식이 되는 말씀 안에 온전히 거하는 과정입니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유월절은 “아빕월”에 있는데 히브리어 ‘아비브’는 ‘부드럽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으며 ‘곡식의 여린 이삭, 녹색’이라는 뜻으로 곡식이 여물기 시작하는 상태를 뜻하는데, 이 시기에 맞추어 유월절을 지키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가장 먼저 구별된 첫 소산"으로 여기신다는 표현입니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고전 15:20-23)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약 1:18)
이제 이스라엘은 출애굽을 통하여 새로운 통치 영역 안에서, 아들이라는 새로운 신분으로,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시간을 살아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구원은 무엇을 더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첫 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의 육은 죽고 영으로 부활의 세계 안에서 첫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양을 취하되(3절).
직역하면 "너희는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에다)에게 말하라. 이르기를, '이 달 열흘에 그들은 각자 자신들을 위하여 양 한 마리를 취하라. 조상의 가문(베이트 아보트)을 따라, 집(바이트) 당 양 한 마리다.'"
“회중”의 히브리어 ‘에다’는 ‘에드’(증인, 증거, 기록자)에서 유래하였는데 ‘정해진 약속에 의해 모인 모임, 집회, 지정된 장소에 모인 집단, 불러 모으다, 소집된 무리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단순히 스스로 모인 백성이나 무리(히, ‘암’)가 아니라 증거하고 기록하기 위한 불러내어진 모임인 것입니다.
이는 야곱 언약에서 “총회”(창 35:11)로 번역하였던 ‘카할’로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비로소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라는 모습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이달 열흘"이라는 표현은 첫째 달의 열 번째 날이 지닌 언약적 완전함 날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언약의 첫 열매를 어린양으로 취하여 확정되는 날이기 때문이죠
가족, 식구라고 번역하였는데 ‘바이트’로 집, 가정이라는 뜻인데 이스라엘의 집은 언약의 말씀이 담겨 있기에 아버지의 집과 같은 것으로 곧 성전을 뜻합니다.
어린양을 취할지니라는 말에서 히브리어 라카흐는 움켜쥐다, 붙잡다, 취하다, 받아들이다는 뜻으로 성전에 어린양이 받아들여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약적 관점에서 어린양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본질을 제대로 드러내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의미이므로 성취된 언약의 차원에서 표현하자면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만이 성전이요 하나님의 집인 것입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후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5)
모세를 통해 주어진 첫 번째 유월절에 대한 말씀을 알기 쉽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① 하나님께서는 재앙이 시작되기 전, 미리 구별된 제물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시기는 유대력 1월 10일에 양을 선택하여 14일까지 4일간 간직합니다.
10일째 되는 날에 가족 수대로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어린양이나 염소)을 취하되, 식구가 적으면 이웃과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룹니다.
② 14일째 해 질 녘에 양을 잡아 그 피를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애굽을 심판하실 때, 그 피를 보고 그 집을 넘어가시겠다는 약속의 표징입니다.
③ 피를 바른 후, 가족들은 집 안에서 양고기를 먹으며 떠날 준비를 합니다.
밤에 머리, 다리, 내장을 통째로 불에 구워 누룩 없는 빵(무교병)과 쓴 나물과 함께 먹습니다.
이는 아랫물(애굽)의 양식을 끊고, 윗물(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식사를 의미합니다
④ 먹고 남은 고기는 아침까지 두지 말고 모두 불에 태워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은 뒤를 돌아보거나 세상의 찌꺼기를 남기지 않는 온전한 구별임을 뜻합니다.
⑤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만찬이 아니라, 곧 시작될 '자유를 향한 출발'을 준비하는 행위입니다.
“그 어린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사람 수를 따라서 하나를 취하며 각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분량에 따라서 너희 어린양을 계산할 것이며”(4절).
직역하면 "그런데 만일 그 집이 양 한 마리를 먹기에 너무 작다면, 그는 자기 집에서 자기에게 가까이 있는 이웃과 함께 인원수(네페쇼트)에 따라 그것을 취하라. 너희 각자가 먹는 양에 따라 그 양에 대하여 너희는 계산할지니라"라는 의미입니다
식구가 적어서 잡은 양 한 마리를 다 먹을 수 없는 경우라면 이웃과 함께 양 한 마리를 다 먹어야 한다는 것이며 한 마리를 다 먹을 수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집으로 온전히 다 드러낼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이웃과 함께함으로써 하나의 집이 되어 성전 됨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언약의 실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웃”이란 나는 할 수 없는데 나와 함께 하여 성전 됨을 드러낼 수 있는 자를 말합니다.
즉 스스로의 힘으로는 유월절 양(생명)을 온전히 취할 수 없는 '빈약한 상태'에 있는 나에게, 스스로 '이웃'이 되어 찾아오셔서나를 '성전'으로 완성시키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 36절에 보면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여기서 헬. 게고넨은 되다'라는 뜻의 '기노마이'의 완료 능동태 직설법 형태입니다.
앞으로 이웃이 되어줄래? 라는 권유가 아닙니다. 이미 이웃이라는 존재로 결과 지어져서, 그 상태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자가 누구냐?"라는 뜻입니다.
즉, 이웃은 내가 노력해서 되는 역할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이미 그렇게 정하시고 우리에게 찾아오신 존재로서 성경에서 이웃은 항상 단수로 표현되어 성전 됨을 드러낼 수 없는 나를 하늘에서 찾아와 하나 되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합니다
“너희 어린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5절).
“어린양”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세’는 ‘양이나 염소를 포함한 가축’을 의미하며 뒤에 언급된 “양”은 ‘케베스’로 ‘어린양’이고, “염소”는 ‘에즈’로 ‘염소’를 지칭합니다.
“흠 없고”의 ‘타밈’은 ‘타맘’(완성하다, 끝나다, 충분하다, 그치다)에서 유래한 단어로 ‘완전한, 흠 없는, 온전한, 순결한, 올바른, 진실한’이라는 뜻이므로 어린양은 온전하고 진실하기에 율법을 완성하여 끝내는 존재이니 곧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3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4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 14:3-5)
“일 년 된”이라고 번역된 말을 히브리어로 보면 ‘벤 샤넬’인데 ‘벤’은 ‘아들’이라는 뜻이고, ‘샤네’는 ‘일 년. 해, 전체의 시대, 긴, 오래된, 매년’이라는 뜻입니다.
직역하면 일 년의 아들인 수컷이라는 의미인데 여기서 히브리어는 나이를 표현할 때 '~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일 년의 아들'이란 생명력이 가장 왕성하고 순수한 상태를 상징합니다.
또한 “수컷”의 ‘자카르’는 일 년 된 아들, 즉 씨 가진 자로 언약을 기억하여 드러낼 수 있는 존재를 가리키는데, 곧 언약의 성취를 나타내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6절)
“열나흗날”에서 ‘열’(히, ‘아사르’)은 열", "가득 참"완전함을 상징하는데, 히브리 사고에서 '10'은 인간이 셀 수 있는 기본 단위의 완성입니다.
이 완전함은 단순히 숫자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법(십계명-열말씀)과 통치가 온전히 실현되는 하나님의 질서의 충만함을 뜻합니다.
‘넷’(히, ‘아르바’)은 땅의 네 방향이나 언약으로 주어졌다는 점에서 보자면 에덴동산의 네 강의 근원과 네모반듯한 날이니 곧 하나님 왕국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창 2:10, 새 번역] 강 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서 동산을 적시고, 에덴을 지나서는 네 줄기로 갈라져서 네 강을 이루었다.
[계 21:16, 새 번역] 그 도성은 네 모가 반듯하여, 가로와 세로가 같았습니다. 그가 자막대기로 그 도성을 재어 보니, 가로와 세로와 높이가 서로 똑같이 만 이천 스타디온이었습니다.
하늘의 뜻이 땅(4)에서 이루어져, 온 땅이 하나님의 성전이 됨을 계시합니다. 14일은 이 '땅의 성전'이 어린양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확정되는 날입니다.
또한 이는 “해질 때”라고 표현하여 해가 지는 어둠을 거쳐 빛이 비치는 밝은 상태를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해질 때”라는 말의 ‘바인 에레브’를 쌍수로 썼는데 ‘저녁들 사이, 두 개의 저녁’이라는 뜻입니다.
즉 첫 번째 저녁은 정오에서 정점을 찍어 해가 지기 시작한 것이고, 두 번째 저녁은 해가 진 오후 6시경부터를 가리키며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지점이라 봤을 때 이스라엘은 두 저녁의 가운데쯤(약 오후 3시경)에 양을 잡기 시작하여 오후 5시쯤에는 양 잡는 일을 끝내고 6시쯤에는 저녁 만찬으로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약 안에서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눅 23:44]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막 15: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따라서 일(10+4)은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10)가 이 땅(4)에 임하여, 온 세상을 하나님의 네모반듯한 성전(왕국)으로 회복하기 시작하는 시점입니다
"나는 할 수 없으나 나를 찾아와 이웃되어 주시는 그리스도"가 그날 '두 저녁 사이'에 죽으심으로,우리라는 무능한 땅은 비로소 에덴의 강이 흐르는 신령한 집으로 건축되는 것입니다.
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6절)
여기서 이스라엘 회중(총회)은 카할로 표현하였는데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그 자체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이 담겨 있기에 이스라엘일 뿐인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양을 잡음으로 하나님의 언약적 부르심에 참여된 존재로 드러낸 것입니다.
‘카할’은 신약에서 ‘에클레시아’로 번역되어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 된 교회’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인간의 의지로 지어진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자들이 모인 공동체, 즉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 어린양의 죽음에 참여된 성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7절).
원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그들은 그 피로부터 취하여, 자신들이 그것(양)을 먹을 그 집들의 두 문설주와 인방 위에 발라야 한다
여기서 우리 성경에 빠뜨린 번역이 있는데 라카흐(취하다, 받아들이다)이다. 즉 ‘그 피를 취하여 혹은 그 피를 영접하여’라는 의미입니다.
“바르고”는 ‘나탄’으로 ‘주다, 두다, 놓다, 세우다’라는 뜻이다. 즉 문에 하나님께서 정하여 세우셨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성경에 “좌우”라고 번역한 ‘셰나임’은 ‘한 쌍, 이중, 두 번째, 짝’이라는 뜻이며, “문설주”의 ‘메주자’는 ‘문기둥’을 뜻하는데 곧 성막 뜰의 문설주이기도 합니다
[삼상1:9]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훗날 신명기 6장 9절(쉐마)의 말씀에 따라 이 '메주자'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상자를 매달았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에게 메주조트는 단순히 건축 자재가 아니라, "이 집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집이다"라는 것을 선포하는 상징적 장소입니다.
강도 만난 자처럼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자의 집을, 참된 이웃이신 그리스도의 피가 문설주가 되어 든든히 버티고 서 계시는 형국입니다.
또한 식구가 적어 이웃과 함께 양을 먹기 위해 그 문을 통과하는 자들은, 문설주에 발린 피를 보며 우리가 하나의 피로 묶인 성전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인방”의 ‘마쉬코프’는 ‘(위에 걸려 있는) 뼈대’라는 뜻인데 문의 윗부분을 가로지르는 가로대를 뜻합니다.
“양을 먹을 집”이란 어린양과 하나 되는, 성전이 되는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이런 점에서 문의 두 기둥과 인방에 어린양의 “피”(히, ‘담’)를 정하여 세우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정하여 세우셨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문설주와 인방에 피를 바르는 것이 '신분'의 변화라면, 그 안에서 양을 먹는 것은 생명의 누림입니다. 성전은 모양만 갖춘 건물이 아니라, 그 안에서 참된 이웃과 함께 생명의 양식을 나누는 살아있는 교제가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여기서 ‘문’이란 이쪽과 저쪽을 구분하는 것인데 그동안 문자적인 율법과 세상적 교훈, 사람의 계명에 행위로 말미암은 자기 의에 갇힌 문의 저쪽 편과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성전이 되는 것으로 구분하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정하여 세우신 것으로 가능하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죄의 권세에 매인 속박에서 자유의 상태에 놓이는 구분이며 진리와 하나 되는 것이 구별이요 자유인 것입니다
[요 8:32, 새 번역] 그리고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양을 먹을 집은 나의 무능함을 고백하고, 찾아오신 이웃과 하나 되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는 은혜의 처소입니다
[벧전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성도 여러분,
유월절은 첫 아담에게 예표로 보여주셨던 창조의 참모습이 역사 속에 드러나는 현장입니다.
주님은 혼돈 속에 있던 우리를 갈라내어 당신의 아들로 삼으심으로써, 아담 안에서 바라보았던 창조의 본래 목적을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내십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성전 삼으시는 이 일은 사람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완성되는 전적인 은혜입니다.
이제 우리는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아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애굽을 떠나는 행위가 아니라, 세상의 양식이 끊어지고 하늘의 생명을 먹는 새로운 존재가 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급히 나아가는 영광스러운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내어 가장 존귀한 첫 열매로 부르신 하나님의 신실하신 열심과 은혜가 여러분의 삶 가운데 영원히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