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요한계시록 1장 11절에서 16절의 말씀을 통해, 일곱 금 등잔대 한가운데 거하시며 교회의 머리와 통치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실체를 마주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지난번 살펴본 말씀은 9-10절로 밧모 섬에 유배된 요한 사도가 받은 이 계시는, 단순히 장래 일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환난과 인내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도록 하기 위해 세상에 머물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요한과 일곱 교회는 성령 안에서 주님의 심판에 동참한 자로서, 이미 말씀의 통치 아래 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겪는 환난과 인내는 단순한 고난이 아니라, 그 나라의 다스림을 받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임을 늘 확인해야만 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나팔 소리 같은 음성으로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하 블레페이스)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11절)라고 말씀하셨는데
직역하면 "말하기를, '네가 보고 있는 것(하 블레페이스)을 두루마리에 기록하라. 그리고 그것을 일곱 교회, 곧 에베소와 서머나와 버가모와 두아디라와 사데와 빌라델비아와 라오디게아로 보내라'라는 의미입니다."
“보는 것”을 기록하라고 하셨는데 단순히 눈만 뜨면 보이는 것을 본다는 뜻이 아니라 ‘보여주신 것을 보고 인식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즉 요한이 환상을 다 본 후 과거를 회상하며 쓰는 것이 아니라,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계시의 실체를 즉시 기록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요한이 본 것은 일곱 금 촛대 사이에 계신 '인자 같은 이'였습니다. 즉, 교회의 실체는 건물이 아니라 우리 곁에 이웃으로 와 계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기록하여 보내라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무능한 일곱 교회(나)에게 하늘의 실체(그리스도)를 기록하여 보내심으로, 우리를 다시 하나님의 온전한 성전으로 묶어세우시는 '교회 연합의 선포'입니다."
당시 소아시아의 인근에 있는 일곱 교회가 어떤 근거로 선정되었는가 하는 문제로 성경학자들 사이에서는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일곱 교회가 선정된 배경에는 당시의 지리적 교통망과 행정적 구조, 그리고 상징적 의미라는 세 가지 핵심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당시 소아시아(현재의 터키 서부)에는 로마가 닦아놓은 효율적인 도로망이 있었는데 에베소를 기점으로 이 일곱 도시는 시계 방향으로 이어지는 순환 도로의 주요 거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도시들은 각 지역의 행정 중심지였습니다. 이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 그 주변에 있는 작은 지교회들로 말씀이 가장 빠르게 확산될 수 있는 '연합의 중심 고리'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소아시아에는 이 일곱 교회 외에도 골로새, 히에라폴리스, 드로아 등 많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일곱 곳이 부름 받은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교회들의 정체성과 운명을 드러내는 영적 지표로서의 상징성 때문입니다."
일곱 교회는 칭찬받는 교회(빌라델비아), 책망받는 교회(라오디게아), 박해받는 교회(서머나) 등 성도들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상황을 대표합니다.
또한 특정 지역의 문제를 넘어, 시공간을 초월하여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 가는 모든 교회가 직면할 영적 전쟁의 양상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상징적 근거로 성경에서 '7'은 하나님의 완전함과 전체성을 상징합니다.
이웃이 '단수'로 표현되어 하나 됨을 계시하듯, '일곱' 교회는 제각각 흩어져 있는 건물이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머리 아래 연결된 그리스도의 몸인 성전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요약하자면 일곱 교회는 당시 가장 소통하기 좋은 교통의 요지였다는 실제적인 이유와 더불어, 모든 시대의 교회가 참된 이웃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하나의 신령한 집'으로 연합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영적 표본으로서 선정된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역사적으로 이 땅에 있는 교회를 어떤 근거로 선택하여 이렇게 서신을 보내었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완성을 보여주는 일곱 교회라는 것이고 그 교회는 근원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의미한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두루마리란 ‘책’입니다.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라고 하였는데 ‘기록하라’라는 표현이 요한계시록에서 12번이나 나오며 2-3장에서 7번 “편지하라”라는 말로 번역되었고 그 외에는 “쓰라, 기록하라”라는 표현으로 5번 나옵니다(1:11,19, 14:13, 19:9, 21:5). 기록된 증거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주셨음을 강조하였으며 이는 모세가 시내 산에서 언약의 말씀을 받는 정황을 요한이 그대로 옮겨온 것처럼 책으로 기록하여 증거를 주셨음을 같은 차원에서 강조한 것입니다 [사 30:8, 새 번역] 이제 너는 가서, 유다 백성이 어떤 백성인지를 백성 앞에 있는 서판에 새기고, 책에 기록하여서, 오고 오는 날에 영원한 증거가 되게 하여라.
[렘 30:2, 새 번역]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너는 내가 너에게 한 말을 모두 책에 기록하여라.
[합 2:2, 새 번역] 주님께서 나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라. 판에 똑똑히 새겨서, 누구든지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여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출 17:14)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12-13절).
“몸을 돌이켜”, “돌이킬 때”(헬, 에피스트레포)라고 같은 표현을 두 번 썼는데 이 말은 구약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다’(히, 슈브)의 역어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집(성전)을 기억하고 발길을 돌리는 그 지점이 바로 에피스트레포입니다.
몸을 돌이켰다를 직역하면"내가 돌아섰다" 앞서 나눈 '에피스트레포'의 과거형입니다. 이전까지 바라보던 세상이나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선이 180도 꺾여, 하나님의 계시가 임하는 방향으로 존재가 바뀌었음을 의미합니다.
내가 보는 방향(나의 의지)에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방향(계시)으로 돌이키는 그 찰나에 연합이 시작됩니다.
돌이켰을 때 보인 '일곱 금 촛대'는 성소 안에 있는 기구입니다. 이는 요한이 몸을 돌이키는 순간, 이미 자신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 안에 들어와 있음을 발견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단순히 요한이 몸을 돌렸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요한을 묵시의 세계로 끌어들이셨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우리 성경에 “알아보려고”라고 번역하였는데 직역하면 ‘보기 위해’, "확인하려고"라는 말입니다. 통상적으로 음성은 듣는 것인데 "본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는 구약을 배경으로 한 표현인데
[출 20:18] 뭇 백성이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 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직역하면 ‘백성이 그 음성을 보았다’라는 말이고,
[신 4:12] "여호와께서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되 음성뿐이므로 너희가 그 말소리만 듣고 형상은 보지 못하였느니라"을 직역하면
그리고 여호와께서 그 불의 중앙으로부터 너희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말소리(콜 데바림)를 듣고 있었으나, 형상(테무나)은 너희가 보지 못하였고 오직 음성(콜)뿐이었다."
"오직 음성뿐이었다" ‘형체를 본 것이 아니라 음성을 보았다’라는 말입니다.
이는 오직 들려오는 음성만이 그분과 백성을 잇는 유일한 통로였음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요 1:23), 즉 보이는 소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였습니다.
즉 구약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보았다는 것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다는 뜻이고, 요한 사도는 음성을 인격으로 표현하여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고 증거 하였습니다.
따라서 구약의 보지 못함은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없는 인간의 무능을 확증하는 사건이었고, 먼저 참된 이웃으로 찾아오심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눈을 가린 너울을 벗기시고 스스로 성전의 머릿돌이 되어주신 은혜의 사건입니다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일곱 금 촛대(헬, 뤼크니아)라고 번역하였는데 ‘등잔대’, 직역하면 "일곱 개의 금빛 등잔대들"입니다.
구약 성소 안의 등잔대는 하나로 연결된 가지 형태였으나, 계시록의 촛대는 각각 독립된 일곱 개로 묘사됩니다. 이는 각 지역의 교회(성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빛을 발하되, 전체로서 하나의 완전성(7)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계 1: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리고 사이라(헬, 메소스)라고 하였는데 정확하게 표현하면 ‘중앙, 한가운데’라는 뜻입니다. 등잔대에 대해 출애굽기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31 너는 순금으로 등잔대를 쳐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결하고 32 가지 여섯을 등잔대 곁에서 나오게 하되 다른 세 가지는 이쪽으로 나오고 다른 세 가지는 저쪽으로 나오게 하며 37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 39 등잔대와 이 모든 기구를 순금 한 달란트로 만들되 40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양식대로 할지니라(출 25:31-40)
창세기에서 광명체(히, 마오르)는 ‘빛을 담는 그릇, 빛이 비치는 장소’ 빛을 나르는 도구”를 의미하고 그것을 성막에서 ‘등잔대’로 표현하였었는데 등잔대는 각각의 부품을 만들어 붙인 것이 아니라 금 한 달란트(약 34kg)를 하나로 연결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촛대 사이에 예수님이 일곱 등잔대 한가운데 계신다는 것은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 된 교회에 중심이 되셔서 머리로써 다스리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즉 본래 스스로는 결코 빛을 낼 수 없는 촛대와 같은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는 성전으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교회의 중심에서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과 간구로 우리를 붙드시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끊임없이 공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생명의 연합이 바로 성경이 증언하는 구원의 신비이며, 주님께서는 이를 일컬어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계 1:20)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라고 하였는데 헬라어 ‘호모이오스’라는 말은 ~와 같은", "동일한 성질의", "일치하는"‘같은 종류의 같은’을 의미합니다.
‘인자’라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지칭할 때 하신 표현으로 헬라어: 휘온 안드로푸, 히브리어: 벤 아담으로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하늘의 권세를 가졌으나 인간의 몸을 입은 통치자를 뜻합니다.
구약에서 선지자들이 인자로서 고난을 받으며 말씀을 선포한 것에 기인합니다 (겔 3:25, 단 7:13 등).
[겔 3:25, 새 번역] 너 사람아, 사람들이 너를 밧줄로 묶어 놓아서, 네가 사람들에게로 나가지 못할 것이다.
[단 7:13, 새 번역] 내가 밤에 이러한 환상을 보고 있을 때에 인자 같은 이가 오는데,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계신 분에게로 나아가, 그 앞에 섰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앞으로 오실 메시아가 고난과 죽음을 당하실 것을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제시되고 있는 인자상은 고난 받는 메시아였다는 이런 점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를 지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인자라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4:14에 보면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라고 하여 왕권을 가지신 인자로 나타냈습니다.
"고난 받는 인자는 우리의 '비참함'에 동참하러 오신 이웃이었고, 구름 위 왕권을 가진 인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완성하러 오신 성전의 주인입니다."
또한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계 22:5)라고 하여 자신의 몸 된 교회와 함께 빛이 되어 왕 노릇 하시는 것을 말씀하는데,
여기서 구약에서는 '마오르(광명체)'와 '메노라(등잔대)'가 빛을 운반했었지만 최종적인 성전에서는 이런 기구가 필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라는 공동체 위에 직접 빛을 비추심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되돌려 드리는 성전(교회)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결국 “인자 같은 이”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만을 말씀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그의 몸 된 교회로 한 몸 된 상태의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한 것이죠
“발에 끌리는 옷”이라는 말은 ‘발에 닿는 옷’으로 제사장의 옷과 같은 것(출 28:1-4, 레 16:4)으로 에봇이나 띠에 해당하는 금띠를 띤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은지상의 성전에서 제사장의 역할을 온전히 성취하여 왕권을 가지신 분으로 나타냈습니다.
[단 10:5] 그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더라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14-15절).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라는 이 말씀 역시 구약의 다니엘서를 배경으로 한 말씀입니다.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단 7:9)
이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그분이 시간 속에 갇힌 우리와 달리, 영원 전부터 거룩의 본체로 존재하셨음을 뜻합니다.
레위기 19:32에서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라는 말씀과 잠언 16:31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라는 말씀을 통해서 보자면,
흰머리는 존귀와 영광을 상징하고 그 노인의 얼굴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할 것을 말씀하였으며 또한 이사야 1:11에서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라는 말씀을 종합해서 보면 흠 없고 정결함으로 영광스러운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그의 눈은 불꽃같고”라고 하였는데 ‘그의 눈은 불의 화염 같다’라는 말입니다. 또한 “그의 발은 풀무불(용광로)에 단련한 빛난 주석(황동) 같고”라고 하였는데 ‘빛나는 청동 같은 발’(승리와 심판의 발걸음)이라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이 이동할 때 나타나는 형상입니다. 고난의 풀무(용광로)를 통과하여 정제된 발은, 우리 삶의 가장 낮은 곳까지 찾아오시는 이웃의 발걸음입니다.
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개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단 10:6)
느부갓네살이 보았던 큰 신상의 머리는 순금이고 가슴과 두 팔은 은이고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고 종아리는 쇠고 발의 얼마는 쇠였지만 얼마는 진흙이었습니다.
[단 2:32-33, 새 번역] 32 그 신상의 머리는 순금이고, 가슴과 팔은 은이고, 배와 넓적다리는 놋쇠이고, 33 그 무릎 아래는 쇠이고, 발은 일부는 쇠이고 일부는 진흙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상은 “손대지 아니한 돌”에 의해 부서지고 그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다(단 2:34).
발이 흙과 쇠로 되어 있는데 이는 융합될 수 없는 재료입니다. 이러한 세상 나라와는 대조적으로 예수님의 발은 청동같이 그 어떤 돌로도 파괴될 수 없는 강한 나라로 기초가 튼튼한 영원한 왕국이라는 뜻입니다
즉 세상은 겉은 화려하나 발밑은 흙과 쇠처럼 위태로운 '아랫물'의 혼돈과 공허의 세계이지만. 그리스도의 발은 빛난 주석 같은 발로 혼돈을 밟고 서 계시는 '진짜 창조'의 주권자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연약한 흙과 같으나, 청동 같은 발을 지닌 주님의 강한 오른손에 붙들려 있기에 영원한 나라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15절 후반부의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성전을 가득 채우는 영광)라고 하였는데 직역하면 ,
그리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들의 소리 같았다.
이 표현 역시 구약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겔 43:2)
에스겔이 환상 중에 본 성전으로 귀환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떠나갔던 영광이 '인자'라는 이웃의 목소리를 타고 우리라는 성전 안으로 다시 돌아오는 사건입니다.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 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16절).
“오른손”이란 ‘권세, 능력’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시 110:1, 마 26:64).
[사 11: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이사야 11:4에서는 “그의 입의 막대기”로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고 49:2에서
[사 49:2]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의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를 갈고닦은 화살로 만드사 그의 화살통에 감추시고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라고 하였는데 막대기, 칼이라는 표현을 통해 심판을 강조한 것으로 결국 심판은 말씀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나타냅니다
[마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엡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주의 말씀이 내가 정한 기약이 이르면 내가 바르게 심판하리니(시 75:2)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라고 하였는데 이 표현 역시 다니엘서 10:6에서 “그의 얼굴은 번개빛 같고”라고 한 인자의 모습을 배경으로 말씀한 것입니다.
여기서 얼굴은 단순히 안면을 뜻하는 '프로소폰'이 아니라 전체적인 용모와 위엄을 뜻하는 '옵시스'가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이 발산하시던 그 모든 광채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통해 우리에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인간의 조직이나 건물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언약하신 하나님이 친히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로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세상을 향하던 눈을 돌이켜(에피스트레포), 일곱 금 등잔대 한가운데서 우리를 붙들고 계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은 기록된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영원한 증거를 주셨습니다(사 30:8, 렘 30:2).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라. 판에 똑똑히 새겨서, 누구든지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여라." (합 2:2)
오늘도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날 선 검과 같은 말씀 앞에 즐거이 굴복되기를 원합니다.
빛난 주석 같은 발로 세상의 혼돈을 밟고 서 계신 그분을 의지하십시오.
우리는 그분의 오른손에 붙들린 별이며, 그분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연합의 신비 안에서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