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2:14-20
사랑하는 믿음의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늘 넘어지고 무너지며 주님의 약속조차 쉽게 잊어버리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복음은 우리가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기억(자칼) 은 단순히 옛 일을 떠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과거에 주셨던 약속을 오늘 우리의 고단한 삶 한복판에서 생명으로 이끌어 내시는 하나님의 멈추지 않는 사랑이며 우리를 향한 실제적인 구원의 손길입니다.
창조 언약, 아담 언약, 노아 언약, 아브라함 언약, 모세 언약, 다윗 언약으로 이어진 구약의 모든 언약이 새 언약으로 그 진의가 다 드러났기에 이 모든 언약은 다른 사람과 맺은 언약이지만 각기 다른 언약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맺은 언약임이 새 언약으로 온전히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구약의 모든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14절).
직역: “그리고 그 시간이 되었을 때, 그분께서 비스듬히 누우셨고 사도들도 그분과 함께 (누웠다).”
“때가 이르매”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원하심에 의해 역사의 시간을 종결할 때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갈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여기에 사도들을 참여시키시는데, 곧 이들이 교회의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엡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모퉁이돌은 건물의 두 벽이 만나는 지점에 놓여 전체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돌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퉁잇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사도들이 교회의 터가 되도록 하셨다는 것이죠.
여기서 사도들의 터는 그들의 무능’이 ‘기초’가 됩니다. 본래 사도들은 주님의 죽음 앞에서 도망치고 부인했던, 스스로는 결코 성전의 재료가 될 수 없는 무능한 상태였습니다.
이런 그들이 터가 된 것은 그들의 능력과 믿음 때문이 아니라, 모퉁잇돌이신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그들 사이(메소스)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모퉁잇돌에 사도들이라는 돌들이 연합(쉰)됨으로써, 비로소 그 무능한 자들이 교회의 견고한 터로 변모된 것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15-17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라는 말씀을 직역하면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성취될 때까지"라는 뜻입니다.
헬, 헤오스 호투:‘~할 때까지’라는 뜻으로, 어떤 목적이나 정점이 완료되는 시점을 향한 강한 지향성을 나타내며, 플레로데-충만하다’, ‘채우다’, ‘완성하다’라는 뜻의 ‘플레로오의 수동태 가정법입니다. 단순히 시간이 지나는 것이 아니라, 내용물이 꽉 차서 목적이 완벽하게 달성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유월절이 하나님 왕국 안에서 충만해지기까지’라는 말씀입니다.
이 포도주는 유월절 완성의 잔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이 유월절의 완성이 목적이었기에 원하고 원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하고 원하였노라 에페뒤메사 에피뒤미안, 직역하면"내가 갈망으로 갈망하였노라"라는 강조 표현으로 매우 간절히 원했다는 뜻입니다.
구약의 유월절은 어린양의 피로 심판을 면하는 ‘그림자’였습니다. 주님은 이제 그 모형의 너울을 벗기고, 자신의 피로 참생명의 실체를 드러내길 갈망하셨습니다.
주님이 그 잔을 드시는 순간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았던 죄의 담을 허물고 우리 한가운데(메소스/타웨크)로 들어오시는 언약적 침투가 시작되는 시점입니다.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19절).
떡을 떼심(에클라센):떼어 "쪼개어/부수어" (나누어 주기 위해 빵을 부수는 행위) 당시 유대인의 빵은 두툼하고 딱딱한 형태였기에 칼로 썰지 않고 손으로 부수어 나누었습니다. 이 행위는 곧 십자가에서 찢기실 예수님의 육체를 상징합니다.
“너희를 위하여”라는 말의 헬라어 ‘휘페르’는 ‘~을 위하여, ~위에, 대신하여, 때문에’ 마땅히 죽어야 할 자의 자리에 대신 서는 것입니다. ~의 위를 덮다.”모퉁잇돌이 사도들을 덮어 보호하는 형상과 같습니다.
폭풍우가 칠 때 어미 새가 날개로 새끼를 덮듯, 주님의 죽음이 우리라는 무능한 존재를 완전히 덮어버리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너희를 위하여(휘페르 휘몬)” 몸을 주신 것은, 죄로 인해 ‘혼돈과 공허’ 상태에 빠진 인간들 위를 자신의 죽음으로 덮으시는 대속 사건입니다.
창세기에서 성령이 혼돈의 수면 위를 덮으셨듯(라하프 :비상하다, 배회하다, 감싸 안다), (창 1 :2, 신 32 : 11) 그리스도는 죄의 죽음 위를 자신의 몸으로 덮으셨습니다(휘페르).
성령이 운행하시기 전 상태는 토후(혼돈)와 보후(공허)였습니다. 즉, 스스로는 아무것도 만들 수 없는 무능 그 자체입니다. 이 무능 위에 라하프 (비상하다, 배회하다, 감싸 안다)’가 임하자 비로소 빛과 생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성막의 덮개(휘장)가 지성소를 덮어 보호하듯, 궁창은 아래의 물이라는 무능한 존재들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파괴되지 않고 성전의 터로 보존될 수 있도록 ‘라하프’ 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궁훌과 자비입니다.
그리고 “기념하라”라고 번역하였는데 헬라어 ‘아남네시스’는 ‘생각나게 하는 것, 기억’이라는 뜻으로 구약에서 히브리어 ‘자칼(기억하다”, “기록하다”, “새기다”, “남자(남성)”)’을 번역한 것으로,. 자칼’은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언약 용어입니다.
즉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너희에게 기억이 되게 할 것이라는 가슴에 새겨주시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20절).
직역하면 "이와 같이 저녁 먹은 후에 그 잔도 (가지시고) 말씀하시기를,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쏟아지는 나의 피 안에 있는 새 언약이다' 하셨습니다."
떡은 예수님의 몸을,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를 상징합니다. 즉 자신의 죽음으로 언약이 완성되는 것을 “새 언약”이라고 하셨는데 헬라어로 ‘호 카이노스 디아데케’로 이미 하나님이 말씀하셨던 ‘그 새로운 언약’입니다.
헬라어에서 정관사 ‘호’가 붙었다는 것은 단순히 막연한 새로운 약속이 아니라, 이미 구약에서 예언되었던 ‘바로 그’ 특정한 언약임을 가리킵니다.
특히 예레미야 31장 31절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하신 그 예언이 예수님의 피로 지금 성취되고 있음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카이노스: 질적으로 새로운 이라는 뜻으로
헬라어에는 '새롭다'는 단어가 두 가지 있습니다.
네오스: 시간적으로 방금 생긴, 연대순으로 새로운 것.
카이노스: 본질이나 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이전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
따라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새 언약'은 단순히 시간적으로 나중에 나온 약속이 아니라, 짐승의 피로 세운 옛 언약(율법)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단번에 영원히 죄를 사하는 완성된 언약임을 뜻합니다.
언약을 뜻하는 또 다른 단어인 '신테케'는 양측의 합의를 뜻하지만, "디아데케"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세우는 "유언"의 성격이 강합니다.
즉, 인간의 조건과 상관없이 하나님(예수님)이 자기 목숨(피)을 담보로 일방적으로 베푸시는 은혜의 계약임을 보여줍니다.
마태복음 13:52에서 우리 성경에 “새것과 옛것”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새것이면서 옛것’이라는 뜻으로 이미 구약에서 예언된 말씀입니다.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1-34)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겔 36:26-28)
예레미야의 새 언약이 '법을 마음에 기록하는 것'이라면, 에스겔은 그것이 성령을 통해 이루어짐을 보여줍니다.
혼돈의 수면 위를 맴돌던 '라하프(비상하다, 배회하다, 감싸 안다)'가 이제 우리 존재의 '타웨크(중앙)'에 들어와 우리를 살아있는 성전으로 빚어내시는 과정입니다.
즉 천지창조에서 하나님의 영이 일하시려는 것이 바로 이 것입니다.
[창 1:2, 새 번역]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하나님의 영이 마음에 법을 기록하는 것이 새 언약입니다. 즉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것인데
[신 6:6, 새 번역]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하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것을 하나님의 영이 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할례 언약도 결국 마음의 할례를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신 30:6, 새 번역]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의 마음과 당신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셔서 순종하는 마음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신들이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렘 4:4, 새 번역]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아, 너희는 나 주가 원하는 할례를 받고, 너희 마음의 포피를 잘라 내어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의 악한 행실 때문에, 나의 분노가 불처럼 일어나서 너희를 태울 것이니, 아무도 끌 수 없을 것이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고후 3:3)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신 어린 양이시기에(요 1:29) 유월절 행사를 반복하는 종교적 행위로 언약을 확인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18절)라고 하셨는데 마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밝혀줍니다.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마 26:26-29)
여기서 예수님께서 다시 마시지 않겠다고 선언하신 것은 유월절 제사의 종결을 의미합니다.
이는 그림자인 어린양의 피(동물 제사)가 아닌, 실체인 예수님의 피가 단번에 드려지기 때문에 더 이상 반복적인 율법적 제사 의식이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단번의 대속을 통해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새 언약의 완성'에 맞춰져 있음을 보여줍니다.
즉 십자가 죽음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새것으로 함께 마시게 되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기서 “떼어”(헬, ‘에클라센’)라는 말은 ‘깨다, 부수다, 쪼개다’라는 뜻이고, “흘리는”이라는 말의 헬라어 ‘엑케오’는 ‘쏟아내다, 부어주다’라는 뜻으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조각내고 부수어 많은 사람 위에 쏟아붓는 피가 언약의 피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자신의 몸을 부수고 쪼개었다는 것을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막 15:38/마 27:51/눅 23:45)라는 말씀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히브리서 기록자는 “휘장은 그의 육체니라”(히 10:20)라고 밝혀줍니다.
성소 휘장은 하나님의 거룩함으로부터 죄인을 보호하는 동시에,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분리의 담이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이 휘장을 걷어낼 힘이 없었습니다. 휘장 안쪽(지성소/타웨크)은 오직 대제사장만이 두려움 속에 접근할 수 있는 금단의 영역이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고백처럼 휘장은 곧 주님의 육체였습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이 "다 이루었다" 하시며 영혼이 떠나실 때(몸이 쪼개질 때), 성전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아래서 위로 찢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위로부터(휘페르) 직접 찢으셨음을 의미합니다. 무능한 우리를 위해 주님이 직접 담을 허무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0:20: "그 길은 우리를 의하여(휘페르 휘몬) 휘장 가운데로(메소스적 의미)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주님의 몸이 쪼개짐으로써, 가로막고 있던 휘장은 이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통로(길)가 되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대신하여(휘페르) 찢기셨기에, 우리는 이제 주님의 찢긴 몸 사이(메소스)를 지나 담대히 지성소(하나님의 심장)로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디아데케)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 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6 유언(디아데케)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17 유언(디아데케)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 18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19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 20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하고 21 또한 이와 같이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15-22)
여기서 헬라어 "디아데케"를 직역: “유언”, “일방적 유증”, “언약”이라는 의미로
어원은 ‘디아( ~를 통하여)’ + ‘티데미(놓다/세우다)’이며 어떤 상태나 조건을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설정하여 배치해 놓은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디아데케라는 유언장과 같이 상속자(우리)의 자격과 상관없이 유언자(주님)가 자기 죽음을 근거로 일방적으로 모든 복을 넘겨주는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없으나 주님이 하신다"는 고백이 바로 이 디아데케입니다. 우리가 담을 허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일방적으로 담을 허물어 놓으신 상태(디아데케)에 우리가 초대된 것입니다.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만 효력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 19:30)라고 말씀합니다.
“다 이루었다”(헬, ‘테텔데스타이’, 완료수동태)는 말씀은 ‘끝내다, 완성하다, 성취하다, 수행하다’라는 뜻이고, “숙이니”(헬, ‘클리노’)는 ‘의지하다, 두다’라는 뜻이며, “떠나가시니라”(헬, ‘파라디도미’)는 말씀은 ‘넘겨주다’라는 뜻으로 직역하면 ‘다 완성되었다라고 하시고 그 머리를 두시고 그 영을 넘겨주셨다’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첫 표적을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으로 율법의 저주 아래 있는 자기 백성들에게 생명을 주실 것을 나타내셨고. 그것을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요 2:11)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의 영광이란 바로 십자가로, 자기 죽음을 통해 생명이라는 자신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내 언약”으로 말씀하셨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죽음으로 책임지고 이루시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죽음이 언약의 완성인 것이고. 그래서 구약에서 율법으로 주신 언약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하게 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
옛 언약이 실패였기에 폐기하고 새롭게 언약을 맺는다는 뜻으로 새 언약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 편에 세워 놓은 언약의 상대자 아담이나 노아, 이스라엘은 철저히 실패하였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호 6:7, 사 24:5, 렘 3:16, 11:10).
그래서 하나님께서 언약책을 주셨으나
[출 24:7, 새 번역] 그리고 그가 '언약의 책'을 들고 백성에게 낭독하니, 그들은 "주님께서 명하신 모든 말씀을 받들어 지키겠다"라고 말하였다.
간음을 행하여 이혼책이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렘 3:8, 새 번역] 유다는, 이스라엘이 나를 배신하고 음행을 하다가, 바로 그것 때문에 나에게서 내쫓기는 것과, 이혼장을 쥐고 내쫓기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 신실하지 못한 아우 유다가 두려운 줄도 모르고, 오히려 자기도 가서 음행을 하였다. 그것을 내가 직접 보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처음부터 내 언약이라고 말씀하셨고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언약으로 말씀하셨기에 하나님 편에서는 실패가 아닌 것입니다.
옛 언약의 본질적인 의미가 다 밝혀졌다는 차원에서
새 언약이라고 표현하였음으로 옛 언약은 새 언약 안으로 흡수되어 완성되는 것이기에 처음부터 영원한 언약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창 9:16, 17:7,13,19, 출 31:16, 레 24:8, 시 105:10, 사 55:3, 61:8, 렘 32:40, 50:5, 겔 16:60).
노아 때 구름 사이에 둔 무지개는 심판의 물 위를 맴돌던 성령의 라하프가 시각화된 것이었습니다.
이 ‘영원한 언약’은 그리스도라는 휘페르(덮으심)의 실제 안으로 흡수되어, 이제 우리를 정죄하지 않는 영원한 평화의 실체가 되었습니다.
언약이 ‘옛 것’이 된 이유는 그것이 나빠서가 아니라, 실체가 오기까지 그 본질을 잠시 가려두었던 너울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오셔서 그 본질을 밝히셨을 때, 모형은 실체 안으로 흡수되어 비로소 영원성’을 획득하게 됩니다.
따라서 창 17:7, 출 31:16 등이 한결같이 ‘영원한 언약’을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의 방식이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출 31:16, 새 번역] 이스라엘 자손은 이 안식일을 영원한 언약으로 삼아, 그들 대대로 지켜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몸과 시간에 하나님의 통치를 새기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결국 우리 존재의 메소스(중앙)에 하나님의 생명을 이식하시겠다는 디아데케(일방적 유언)의 예표였습니다.
[렘 24:8, 새 번역] 그러나,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의 대신들을 비롯하여, 예루살렘에 남은 사람들과 이 땅에 남은 사람들과 이집트 땅으로 간 사람들은, 아주 나빠서 먹을 수가 없는, 나쁜 무화과처럼 만들어 버리겠다. 나 주가 분명히 말한다.
"아브라함의 할례나 성소의 떡은 모두 인간의 무능을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덮으시겠다는 동일한 ‘휘페르’의 모형들입니다. 이 모든 모형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최종적인 실체 안에서 하나로 합쳐진 것입니다."
[겔 16:60, 새 번역] 그러나 나는 네 젊은 시절에 내가 너와 맺은 언약을 기억해서,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겠다.
하나님의 자칼(기억)은 과거의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 오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새 생명이 되게 하는 것인, 그것이 바로 시간을 뛰어넘어 약속을 완성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결국 구약의 모든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 안에서만 유효한 '약속된 미래'였으며,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그 모든 약속은 비로소 단 하나의 완성된 복음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한편 구약에서 언약을 다양하게 표현하였는데 “소금 언약”(민 18:19, 대하 13:5)으로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레 2:13), 분향단의 향을 만들 때도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하고”(출 30:35)라고 말씀하셨고 또한 “화평의 언약”(민 25:12, 사 54:10, 겔 34:25, 37:26)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막 9:5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금’이란 정결과 거룩의 상징이요 변하지 않다는 영원한 것으로의 상징으로(민 18;19, 대하 13:5)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화목, 화평을 이루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롬 5: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엡 2:12-15, 새 번역]
12 그때에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었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제외되어서, 약속의 언약과 무관한 외인으로서, 세상에서 아무 소망이 없이, 하나님도 없이 살았습니다.
13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졌습니다.
14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15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평화를 이루시고,
그뿐 아니라 “거룩한 언약”에 대하여
[단 11:28-30, 새 번역]
28 북쪽 왕은 전리품을 많이 가지고 그의 본토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거룩한 언약을 거역하려는 마음이 있어서, 자기 마음대로 하고서야 그의 땅으로 돌아갈 것이다.
29 정한 때에 그가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서 이집트를 치지만, 그때에는 전번과 다를 것이다.
30 서쪽 해안의 배들이 그를 치러 올 것이고, 그 때문에 그는 낙심할 것이다.
그는 퇴각하는 길에, 거룩한 언약을 맺은 사람들에게 분풀이를 할 것이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는, 거룩한 언약을 저버린 사람을 뽑아서 높이 앉힐 것이다.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연결하였습니다.
[눅1:72, 새 번역] 주님께서 우리 조상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자기의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생명”(요 14:6)이시고 “화평”(엡 2:14-15) 이시기에 “생명과 평화의 언약”(말 2:5)이라고 말씀한 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루실 언약이라는 의미로 말씀한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생명이 있으므로 그 생명에 동참되어 생명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낡은 율법적 성전을 허물고 ‘결코 쇠하지 않는 영원한 생명의 성전’으로 다시 태어나는 유일한 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요 6:53-57)
이런 점에서 바울 사도는 선언하였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6-29)
우리는 이제 율법의 종교적 행위를 반복하는 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존재로 새 생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으며,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약속된 유업을 이을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칼"은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기억하십니다.
우리의 무능함 위에 주님의 ‘휘페르(덮으심)’의 은혜가 머물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의 새 언약 안에서 당당히 생명의 길을 오직 믿음으로 걸어가십시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의 심령 속에 영원히 새겨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